
주교
성 넥타리오
(Nectarius)
넥따리오 · 넥따리오스 · 넥따리우스 · 넥타리오스 · 넥타리우스 · 케팔라스
성 넥타리우스(또는 넥타리오)는 1846년 10월 1일 오스만 제국의 셀림브리아(Selymbria,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 주의 실리브리 Silivri)에서 아나타시오스 케팔라스(Anastasios Kephalas)라는 이름으로,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 일과 교육을 위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오늘날의 이스탄불)로 이주했고, 20살에 교사직을 얻어 키오스(Chios) 섬으로 갔다.
그리고 1876년 11월 7일, 서른의 나이에 오랜 소망대로 키오스 섬의 네아 모니(Nea Moni)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3년 후 부제품을 받으며 넥타리우스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1885년 아테네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가서 사제품을 받고 카이로(Cairo)의 성 니콜라스(Nicholas)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1889년 그리스 정교회의 소프로니우스(Sophronius) 총대주교에게 펜타폴리스(Pentapolis,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리비아 동부 지방에 있던 옛 교구)의 수석 주교로 축성되었다.
카이로에서 1년 동안 주교로 사목하면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는 동료들의 질투와 견제로 이어졌다. 1891년 성 넥타리우스 주교는 그리스로 돌아와 몇 년을 설교사제로 보내고, 아테네에서 15년 동안 사제 교육을 위한 리자리오(Rizarios) 신학교의 학장으로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 보급하며 왕성한 저술 활동도 이어갔다. 1904년, 몇몇 수녀들의 요청으로 아이기나(Aegina, 에기나) 섬에 삼위일체 수녀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1908년 12월, 신학교 학장직에서 물러나 아이기나 섬의 삼위일체 수녀원으로 들어가 여생을 수도자로 살았다.
그는 책을 저술하고 고해성사를 주며 정원을 가꾸고 수도원 건립을 위해 직접 돌을 나르는 등 수녀원 재건 사업에 헌신했고, 동시에 수도생활의 부흥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그의 편지들은 그리스 수도원의 중요한 문서로 인정받고 있다.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은 그는 1920년 11월 8일, 74세의 나이로 선종해 삼위일체 수녀원에 묻혔다.
그는 1961년 4월 20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에 의해 성인으로 공식 인정되었고, 매년 11월 9일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1건)
- 소포클리스 디미트라코풀로스 저, 에기나의 넥타리오스 성인 - 20세기의 세계적인 성인, 서울(정교회출판사), 2010년.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