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탄젤로

신부 · 순교자

복자 아가탄젤로

(Agathangelus)

아가탄젤루스 · 아가탄겔루스 · 아가탄겔로

8월 7일📍 방돔(Vendome)🕰 1598-1638년

복자 아가탄겔루스(또는 아가탄젤로)는 1598년 7월 31일 프랑스의 방돔에서 태어나 프랑수아 누리(Francois Noury)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21살이 되던 1619년에 르망(Le Mans)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Cap)에 입회하여 아가탄젤로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1625년에 사제품을 받고 한동안 푸아투(Poitou)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그리고 1629년에 시리아 북부의 알레포(Aleppo)로 파견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 상인들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하면서 아랍어를 공부해 일상적인 대화나 강론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그는 무슬림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존경을 받았고, 무슬림 사회의 문맹 퇴치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또한 당시 교황청에서 공개적으로 무슬림에게 그리스도교를 선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금지하는 상황에서도 선교활동을 계속하며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아랍어로 가톨릭 서적을 출판하기도 했다. 1630년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이집트의 카이로(Cairo)에 선교지를 확보하고 활동을 개시했는데, 복자 아가탄젤로는 1633년 그곳의 책임자로서 파견되었다.

이때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온 3명의 선교사가 합류했는데, 그들 중에는 낭트(Nantes) 출신의 복자 카시아노(Cassianus) 신부도 있었다.

복자 카시아노는 1607년 1월 15일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낭트에서 포르투갈 출신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곤살레스 바스 로페스-네토(Gonzalez Vaz Lopez-Neto)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앙제(Angers)에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카시아노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1633년 카이로에 온 뒤에는 복자 아가탄젤로 신부의 오른팔이 되어 활동했는데, 그들이 특히 관심을 두고 노력한 것은 로마(Roma) 교황청과 콥트 정교회 간의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겸손한 노력 덕분에 콥트 정교회의 총대주교는 복자 아가탄젤로에게 성당을 개방하고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하며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복자 아가탄젤로와 복자 카시아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들게 선교활동을 계속하다가 1637년 말에 아비시니아(Abyssinia, 현재의 에티오피아)로 파견되었다.

사실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오랫동안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고유한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16세기부터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의 강압적인 통치와 1555년에 진출한 예수회와 라틴 교회가 그들의 전통을 배려하지 않고 선교하면서 결국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도착은 상황을 더 악화했고, 그로 인해 두 신부는 6개월 만인 1638년 초여름에 체포되어 곤다르(Gondar)로 끌려갔다.

그들은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한 달간 감옥에 갇혔다가 파실리데스(Fasilides) 왕의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에티오피아 교회와 가톨릭교회의 화해를 위해 왔다고 파견 목적을 설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후 돌팔매질을 당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허리띠로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수도승인 복자 아가탄젤로와 복자 카시아노 신부의 순교 소식은 유럽에 전해졌지만, 그들의 영웅적인 모범이 그 지역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이 지역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의 활동이 어려웠지만, 19세기 말에 에티오피아 지역이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면서 다시 가톨릭 선교사들이 에티오피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1846년 괄라(Guala)에 교황 대리구가 설립되면서 초대 주교로 임명된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굴리엘모 마사이아(Guglielmo Massaia)의 노력으로 그들에 시복 절차가 시작되었다.

복자 아가탄젤로와 복자 카시아노는 1905년 1월 1일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7일 목록에서 방돔 출신의 복자 아가탄젤로와 낭트 출신의 복자 카시아노가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 사제로서 시리아와 이집트 그리고 에티오피아에서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그리스도인들과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다가 에티오피아 왕의 명령으로 곤다르에서 돌에 맞고 자신들의 허리띠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