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 순교자
성녀 김효임 골룸바
(金孝任 Colu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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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효임 콜룸바(金孝任 Columba, 또는 골룸바)는 1814년 서울에서 가까운 밤섬이라는 마을에 사는 부유한 어느 비신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김효임은 6남매 중 둘째였던 것 같고, 넷째가 성녀 김효주 아녜스(金孝珠 Agnes), 다섯째가 클라라(Clara)이다.
이 셋은 동정을 지켰다.
김효임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와 같은 때에 입교하였고, 이때 동정을 지키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들에게 결혼을 권해 마지않았고 그때마다 그들은 거절하였으며, 결국 결혼한 여자로 보이기 위해 머리를 말아 올려 쪽지게 하였다.
동정을 허원한 두 자매는 서울에서 30리가량 떨어진 경기도 고양의 용머리 마을에 사는 오빠 김 안토니오(Antonius)의 집에서 살았다.
이때 그녀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일주일에 두 번 대재를 지키며 남을 권면하고 애긍도 많이 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모든 교우가 그들을 칭찬하며 그들의 덕행과 아름다운 표양에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한창이던 5월 3일에 김사문이라는 한 밀고자가 김효임의 집을 돈 많은 교우 집이라고 고발하였다.
이때 김 안토니오와 가족들은 미리 소문을 듣고 모두 피신했지만, 김효임과 김효주 자매와 어린아이 한 명이 체포되어 서울 좌포청으로 압송되었다.
김효임은 보통 여자보다 겁이 많아 어떤 교우가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자신이 체포되어 끌려갈 때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김효임 골룸바가 동생 김효주 아녜스와 함께 포장 앞에 끌려 나가자 포장은 물었다. “너희는 어찌하여 혼인을 아니 하였느냐?” 그러자 김효임이 답하였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정결하게 보존하고 천지(天地) · 신인(神人) · 만물(萬物)을 창조하신 천주님을 섬기고 흠숭하여 우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동정의 신분과 의미를 명백히 밝힌 것은 김효임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모두 이 대답을 피하거나 다른 구실을 댔었기 때문이다.
포장은 계속해서 물었다. “너희들은 인륜을 파괴하는 일이요, 나라에서 엄금하는 일을 감히 한단 말이냐? 천주를 배반하고 너희 책이 어디 있는지 말하고, 동교인을 대라.
그리고 너희 오라비가 어디로 갔는지도 말해라.” 김효임은 “만 번 죽어도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고 우리 오라비로 말씀하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김효임은 배교할 수 없고 또 교우들을 고발하지 못하며, 교리서를 바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포장은 김효임의 주리를 틀고 뾰족한 몽둥이로 찔렸으나 조금도 굴하는 빛이 없는 것을 보고 “더 세게 찔러라.” 하고 형리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김효임은 태연자약하게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더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다시 옥으로 끌려 들어간 김효임 자매는 옷을 벗기고 매를 몹시 맞는 등 모욕을 당하였다.
김효임은 붉게 탄 숯불로 열두 번이나 지지는 형벌을 당하였지만, 4, 5일이 지나자 다시 기운을 차리고 덴 자리도 씻은 듯이 나았다.
이를 지켜본 형리들은 이상히 여기며 김효임에게 귀신이 접한 줄로 생각하여 부적을 써서 그녀의 어깨에 붙이기도 했다.
이윽고 형리들은 자매의 옷을 벗겨 도둑감방으로 몰아넣고 모욕을 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순결한 영혼들의 천상 정배께서 오시어 그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내려 주셔서 한 사람이 능히 열 남자를 당해 낼 만큼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이기게 하셨다. “너희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그것이 참말이냐?” 하고 묻는 포장에게 김효임은 답하였다. “관장께서 말씀하시는 제사는 헛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이 생일이나 무슨 명절을 당하여 아무리 자식들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청한다고 할지라도 자기들 마음대로 옥에서 나가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하물며 지옥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거기서 나와 제사에 참례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 그것은 헛되고 거짓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효임은 조심성 있고 재간 있는 답변으로 재판관들을 놀라게 하였다.
김효임과 김효주 자매는 5월 9일 형조로 이송되었고, 5월 12일에 형조판서 앞에 출두해서 신문을 받았다.
그곳에서 문초가 끝날 무렵 김효임은 자기와 동생이 당한 모욕적인 사실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나서 아래와 같이 덧붙여 말하였다. “서민의 딸이건 양반의 딸이건 우리는 존중함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사옵니까? 나라 법에 의해 우리를 죽이신다면 즐겨 죽겠사옵니다.
그러나 법에도 없는 그런 모욕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옵니다.” 이러한 내용의 진상을 듣자 재판장은 그녀의 언변에 감동하여 법 이외의 형벌을 가한 자들을 꾸짖고, 그들 중에서 두 사람은 귀양을 보냈다.
그 후 김효임은 다시 법정에 끌려 나가 세 차례나 곤장을 맞았으나 흔들리거나 용기가 줄어드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칼을 받고 동정으로 순교하니 그녀의 나이는 26세였다.
성녀 김효임 골룸바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9월 26일 순교했으나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에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모두를 전례적으로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서 한국의 서울에서 이날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南履灌 Sebastianus)와 성녀 김효임 골룸바를 포함한 8명의 동료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참수당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과부 순교자인 성녀 김 루치아와 성녀 이 가타리나(李 Catharina)와 그녀의 딸인 동정 순교자 조 막달레나(趙 Magdalena)도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9월의 어느 날 옥중에서 순교했음을 함께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5건)
- 구중서 외 저,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2 - '성녀 골룸바 김효임, 성녀 아녜스 김효주',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2년, 137-148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녀 김효임 골롬바와 김효주 아녜스 동정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78-82쪽.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13장 허 막달레나 외 순교자 8위', 서울(가톨릭출판사), 2016년, 218-248쪽.
- 최홍준 저, 무한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 '김효임 효주 동정 자매', 대구(가톨릭신문사), 1999년, 95-11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김효임과 김효주',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1231-1233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