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1세

교황

스테파노 1세

(Stephen I)

스더 · 스테파누스 · 스테판

8월 2일🕰 +257년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또는 스테파노 1세)는 이탈리아 로마(Roma)의 귀족 율리우스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요비우스(Jovius)였다.

그는 교황 성 루치오 1세(Lucius I, 3월 5일)를 계승하여 254년 5월 12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에 교황직을 수행했는데,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 재위)와 갈리에누스 황제(253~268년 재위)는 즉위한 후에 선임자인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와 갈루스 황제(251~253년 재위)가 시행했던 교회에 대한 혹독한 박해를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교회 내부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배교하여 면직된 두 명의 에스파냐 주교의 소명을 듣고 복직을 허락했는데, 그로 인해 에스파냐 주교는 물론 당시 아프리카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카르타고(Carthago)의 성 치프리아노(Cyprianus, 9월 16일) 주교와 충돌하였다.

성 치프리아노는 선임 교황인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9월 16일)가 결정했듯이 “그들이 참회할 수는 있으나 성직자의 신분이나 주교 신분은 면직되어야 한다.”라는 결정을 고수하며 교황 성 스테파노 1세가 선임 교황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반발했고, 지역 공의회를 열어 그들의 면직을 재확인했다.

두 번째 충돌은 프랑스 아를(Arles)의 주교인 마르키아누스(Marcianus)와의 관계에서 발생했다.

마르키아누스는 대립교황인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이단의 엄격주의를 옹호하며, 박해 때 배교한 이들이 임종 때에 참회하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래서 그 지역 주교들이 교황 성 스테파노 1세에게 마르키아누스의 면직을 청했으나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지역 주교들의 도움 요청을 받은 성 치프리아노가 교황에게 마르키아누스를 파문하고 새로운 주교를 정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교황 성 스테파노 1세는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와의 치열한 논쟁 속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권적인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는 로마 교회의 수위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성 베드로에게 준 특권, 즉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는 말씀에 기인한다고 주장한 첫 번째 교황이었다.

세 번째 충돌은 당시 신학적으로 가장 큰 문제였던 ‘이단 세례’, 즉 이단자들이 집전한 세례의 유효성에 관한 것이었다.

북아프리카와 시리아와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성 치프리아노와 함께 세례는 오직 가톨릭교회 안에서만 행해질 수 있으며, 이단자가 행한 세례는 무효이기에 참회 또는 개종하고 교회와 화해하기를 원하는 이단자는 다시 유효한 가톨릭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통에 따라 재세례(再洗禮)가 필요하지 않고, 단지 참회와 보속을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가 확정하였다.

교황은 재세례는 교회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라 받아들일 수 없고, 사도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은 다른 모든 주교에 대해서 수위권을 갖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오직 한 번의 세례만이 존재하며, 그 세례의 유효성은 집전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성사를 제정했다는 데 기인한다고 주장하면서 북아프리카에서 열린 교회 회의의 결정을 모두 거부하였다.

로마 교회와 아프리카 교회와의 갈등과 분열의 위험이 고조되다가 257년 8월 2일 교황 성 스테파노 1세가 선종하고, 이듬해에 성 치프리아노 주교가 순교하면서 다소 완화되었다.

그리고 ‘화해하는 교황’으로서 아프리카와 동방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힘쓴 교황 성 식스토 2세(Sixtus II, 8월 7일)에 의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연대 교황표”와 후대의 전설에 따르면 교황 성 스테파노 1세가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했다고 전해지지만, 354년의 로마 전례력은 그를 자연사한 주교 명단에 넣었다.

오늘날 교회는 그를 선종한 교황으로 보고 있는데, 그의 시신은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의 교황 묘지에 안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일 목록에서 로마의 칼리스투스 묘지에서 교황이자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는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당시 그는 미사를 집전하던 중 병사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지만 끝까지 제단에 남아 거룩한 미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참수당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의 칼리스투스 묘지에 안장된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세례로 하나가 되는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원칙을 명확히 하기 위해 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맺으려는 자들이 다시 세례받는 것을 금지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4건)
  • 루돌프 피셔-볼페르트 저, 안명옥 역, 교황사전 - 스테파노 1세, 서울(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년, 11-12쪽.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스테파노 교황', 서울(일파소), 2023년, 608쪽.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스테파노 1세,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59-61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스테파노 1세',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262-5264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