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아노

군인 · 순교자

세바스티아노

(Sebastian)

세바스띠아노 · 세바스띠아누스 · 세바스찬 · 세바스챤 · 세바스티아누스 · 쎄바스띠아노 · 쎄바스띠아누스

1월 20일📍 로마(Roma)🕰 +4세기초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에서 태어나 그의 부모가 태어났던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Milano)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다고 밀라노의 주교인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가 전해주었다.

또한 성 세바스티아노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대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해 지하 묘지에 안치되었고, 이미 성 암브로시오 시대에 밀라노에서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를 공경하고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그 외에 450년경 아르노비우스(Arnobius)라는 수도자가 쓴 “성 세바스티아노의 수난기”(Passio S. Sebastiani)와 5세기의 다른 행전에 따르면, 그는 고향에서 누리던 화려한 경력을 포기하고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돌보기 위해 283년경 로마군에 입대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신임을 얻어 황제 친위대의 지휘관이 된 그는 비밀리에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었고, 성 마르코(Marcus, 6월 18일)와 성 마르첼리아노(Marcellianus, 6월 18일) 형제 부제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했다.

또한 간수들을 포함해 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로마 궁중의 고위 관리인 순교자 니코스트라투스(Nicostratus)와 그의 아내 성녀 조아(Zoa, 7월 5일)가 있었다.

특히 성녀 조아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으나 성 세바스티아노의 기도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간수였던 클라우디우스(Claudius), 로마의 집정관인 크로마티우스(Chromatius)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우스(Tiburtius) 등이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성 세바스티아노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을 몰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 대한 황제의 포악한 박해에 대해 성 세바스티아노가 공공연히 비난하고, 286년경 한 배교자의 고발을 통해 그가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성 세바스티아노는 황제 앞에 당당히 나아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고백하였다.

황제는 격노해서 그를 궁수들에게 넘겨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렇게 성 세바스티아노는 궁수들이 쏜 화살을 온몸에 맞고 쓰러졌다.

로마의 성 카스툴로(Castulus, 3월 26일)의 미망인인 이레네(Irene,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성인으로서 1월 22일에 기념해왔으나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지는 않았다)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기적적으로 회생시켰다.

그 후 성 세바스티아노는 황제 앞에 다시 나타나 구세주께서 자기를 치유해주셨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짓밟는 황제의 불의한 박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항하라 하셨다며 황제의 잔인성을 비판하였다.

그러자 화가 난 황제는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한 다음 로마의 하수구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큰 시궁창’이라는 뜻)에 던져 버렸다.

전통적으로 그의 순교 시기를 288년경으로 보았는데, 황제 앞에서 당당히 신앙을 증거하고 황제의 잘못을 꾸짖은 성 세바스티아노의 용기와 죽음은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한편 순교한 후에 성 세바스티아노는 로마에 사는 루치나(Lucina)라는 부인의 꿈에 나타나 하수구에서 자신의 시신을 찾아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이 있는 자리 근처 지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치나 부인에 의해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지하 묘지에 묻혔다. 367년에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는 그가 묻힌 카타콤바 근처에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을 설립하여 봉헌하였다.

그리고 680년 로마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로마인들은 페스트가 멈추기를 기원하며 성 세바스티아노의 유해를 모시고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자 그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로도 1575년 밀라노(Milano)에, 1599년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도 성 세바스티아노의 보호를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성 세바스티아노를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군인과 운동선수 그리고 궁수들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20일 목록에서 로마의 지하 묘지에 순교자 성 세바스티아노가 묻혀 있는데,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휘하 제1군단의 지휘관이었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넓은 들판 한가운데 있는 나무에 묶여 병사들의 화살에 맞고 몽둥이로 얻어맞아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 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암브로시오의 기록에 따르면 밀라노 출신의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가 극심한 박해가 한창이던 때에 외국인으로서 로마에 와서 고난을 겪고 그곳에서 영원 불멸의 거처를 찾았으며, 그의 시신도 로마의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의 순교 시기는 4세기 초라고 표기하였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출처 (6건)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세바스티아노', 서울(한길사), 2014년, 223-227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0-22쪽.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세바스티아노', 서울(일파소), 2023년, 166-172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세바스티아노', 서울(으뜸사랑), 2014년, 32-3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 - '세바스티아노',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9년, 4930-4933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세바스티아노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30-31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