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부 · 수녀원장
성녀 베르타
(Bertha)
베르따 · 벨따 · 벨타
성녀 베르타는 644년경 프랑스 북부 파드칼레(Pas-de-Calais) 지역의 아르투아(Artois)에서 프랑크 왕국 네우스트리아(Neustria)의 왕 클로비스 2세(639~657년 재위)를 섬기던 리고베르(Rigobert) 백작과 영국 켄트(Kent) 왕의 딸인 우르사나(Ursana)의 딸로 태어났다.
아름답고 경건하게 성장한 성녀 베르타는 20살 때에 왕의 사촌인 귀족 지크프리트(Siegfried)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딸을 낳았다.
화목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중 672년 또는 678년경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성녀 베르타는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수도 생활에 정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오늘날의 파드칼레에 속한 아르투아 지역의 아라스(Arras) 근처 블랑지(오늘날의 블랑지쉬르테르누아즈[Blangy-sur-Ternoise])에 수도원을 세우고 682년에 성대한 봉헌식을 올렸다.
그리고 두 딸인 제르트루다(Gertrudis)와 데오틸라(Deotila)와 함께 그곳에 들어가 수녀원장으로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성녀 베르타는 생애의 말년에 데오틸라에게 원장직을 물려주고 작은 독방에 들어가 오로지 기도 생활에만 전념하며 은수자처럼 지냈다.
그리고 725년경 7월 4일 노환으로 선종하여 수도원 성당에 묻혔는데, 그녀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녀의 유해는 노르만족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895년에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근처 에르스테인(Erstein)으로 옮겼고, 1032년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재건된 블랑지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노르만족이 수도원과 그 안의 사료를 모두 파괴했기 때문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4일 목록에서 프랑스 아라스 지역의 블랑지에 성녀 베르타 수녀원장이 있었는데, 그녀는 딸들인 제르트루다와 데오틸라와 함께 자신이 세운 수도원에 들어가 살다가 말년에 독방에 은둔하며 살았다고 기록하며 그녀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블랑지의 성녀 베르타는 아르투아의 성녀 베르타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