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 순교자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
(Charles Spinola)
가롤루스 · 가를로 · 까롤로 · 까롤루스 · 샤를 · 샤를르 · 찰스 · 카롤로 · 카롤루스 · 카를로 · 카를로스 · 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10일 목록에서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잔혹한 고문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언덕 위에서 순교한 예수회의 복자 세바스티아노 기무라(Sebastianus Kimura) 신부와 도미니코 수도회의 복자 프란치스코 모랄레스(Franciscus Morales) 신부, 그리고 그들과 함께 50명의 동료가 순교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50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사제 · 수도자 · 평신도 교리교사 · 제3회원 · 성모 로사리오회 회원은 물론 부부, 과부, 청년, 어린이 등 다양한 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모두 1867년 7월 7일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 알폰소 나바레테(Alphonsus/Alfonso Navarrete)와 그의 동료 204위, 1617년에서 1632년 사이 일본에서 순교한 사람들’이란 명칭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고, 보통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로 불린다.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 2월 6일)와 25위의 동료가 순교한 이후 일본에 남은 선교사들은 모두 일본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30여 명의 사제는 교우들을 위해 남아서 숨어지냈다.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한 후 박해가 잠잠해지면서 예수회를 비롯해 선교사들의 활동이 재개되어 1612년까지 평화롭게 지내며 교회 또한 크게 성장하였다. 1612년 몇몇 지방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 막부 시절에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를 파괴하거나 폐쇄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금지하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박해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이 순교하면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지하로 숨어들어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기까지 은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카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복자 카롤루스 스피놀라(Carolus Spinola, 또는 가롤로 스피놀라)는 1564년에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에서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스피놀라 가문 출신으로 타사롤라(Tassarola)의 백작인 오타비오 스피놀라(Ottavio Spinol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마드리드에서 황제의 아들인 루돌프 왕자의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는 에스파냐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1572년 삼촌이 주교로 있는 이탈리아의 놀라(Nola)로 건너가 삼촌과 함께 지내며 예수회 학교에서 수학했다. 1583년에 인도에서 순교한 복자 루돌포 아콰비바(Rudolphus Aquaviva, 7월 25일) 신부와 동료들의 순교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 그는 1584년 12월 23일 놀라의 수련원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나폴리(Napoli)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586년 12월 25일 첫 서원을 한 후 밀라노(Milano)로 가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94년에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잠시 크레모나(Cremona)에서 본당 사목을 했다. 1596년 초에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는 평소 간절히 바랐던 대로 해외 선교사 발령을 받고 제노바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을 향해 출항했다.
하지만 배가 좌초되어 제노바로 돌아왔다가 다음 배의 출항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행과 함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걸어서 리스본까지 가서 1596년 4월 10일 일본을 향해 출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희망봉을 향하던 중 폭풍으로 브라질의 한 항구에 갔다가 수리 후 다시 출발했으나 또 다른 폭풍을 만나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항으로 피신하고, 재차 출항했다가 영국 해적선을 만나 앵글랜드(England)의 야머스(Yarmouth)로 끌려갔다가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다. 1598년 1월 독일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 리스본을 떠난 지 2년 만에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1599년 3월 인도를 향해 다시 출항해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elaka)를 거쳐 마카오(Macao)와 중국 해안을 지나 선교 여정을 시작한 지 6년 만인 1602년 7월 마침내 일본의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어렵게 일본에 도착한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는 규슈(九州, Kyushu) 남단의 아리마(Arima) 신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한 후 잠시 본당 사목을 하다가 오늘날의 교토(京都, Kyoto) 지방인 수도 미야코(宮古, Miyako)에 설립된 예수회 대학에서 당시 일본인들이 큰 관심을 두었던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미야코 대학에서 7년을 재직한 후 1611년부터 나가사키 관구 책임자로 임명되어 체포될 때까지 소임을 수행했다. 1612년경 일본 내의 그리스도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본 막부에 있는 비그리스도인 요인들이 선교사들이 에스파냐의 일본 점령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선동하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모든 무역을 장악하고자 했던 네덜란드와 영국 상인들도 그에 동조하면서 1614년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 막부의 선교사 추방과 그리스도교를 금하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대박해가 시작되었다.
예수회 선교사 중 100여 명은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나 마카오로 떠났고 20명 정도가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에 남아 신자들을 돌봤는데,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는 4년 동안 당국의 눈을 피해 밤에 주로 이동하며 선교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618년 12월 13일 밤, 다른 두 명의 평신도 동료와 함께 어느 포르투갈인 신자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밧줄에 묶여 나가사키에서 32km 떨어진 오무라(Omura) 근처 스즈타(Suzuta) 감옥으로 끌려갔다.
감옥은 새장처럼 기둥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벽도 지붕도 없는 곳이었다.
바닷가의 매서운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 겨울의 추위와 눈발에 그대로 노출된 극도로 열악한 좁은 감옥에 수십 명이 갇혀 누울 수조차 없었다.
그동안에도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는 계속해서 잡혀 오는 신자들을 격려하며 그들의 영적 지도를 이어갔다.
그래서 예수회 관구장의 허가를 받고 감옥 안에서 예수회 수련생을 받아 교육하였다. 1621년 여름, 일본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은 예수회의 복자 세바스티아노 기무라 신부와 두 명의 동료가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1622년 9월 나가사키로 이송된다는 통보를 받고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와 여러 수도회의 선교사들 그리고 일본인 그리스도 신자들은 순교를 준비했다.
감옥에서 수련원을 운영하던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는 감옥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지도하던 7명의 수련자에 대한 서원식을 거행했다.
그렇게 나가사키의 골고타 언덕으로 불리는 니시자카(西坂, Nishizaka) 언덕에 도착한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와 동료들은 9월 10일 화형과 참수형으로 순교했는데, 22명의 수도자는 화형으로, 나머지 30명 신자는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화형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처형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수도자들의 손은 기둥 뒤로 느슨하게 묶여 있어서 신앙을 포기한다면 탈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듯했으나 누구도 신앙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렇게 52위의 순교자가 모두 화형과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은 개별적으로 순교한 날에 각자의 기념일을 지내지만, 일본 교회는 특별히 52명의 순교복자가 탄생한 9월 10일을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52명의 순교를 ‘나가사키 대순교’ 또는 ‘겐나 대순교’라고 부르는데, 후자는 1615년 7월부터 1624년 2월까지를 가리키는 일본의 연호가 겐나(Genna)라서 붙은 명칭이다.
다양한 연령대와 신분으로 이루어진 9월 10일 ‘겐나 순교자’들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인 복자 안젤로 오르수치(Angelus Orsucci, 1573년 이탈리아 루카 출생) · 복자 알폰소 데 메나(Alphonsus de Mena, 에스파냐 로그로뇨 출생) · 성 히야친토의 복자 요셉 살바네스(Josephus Salvanes of St. Hyacinth, 1580년 에스파냐 비야레호 데 살바네스 출생) · 복자 히야친토 오르파넬(Hyacinthus Orfanell, 1578년 에스파냐 발렌시아의 야나 출생) 그리고 같은 수도회의 수도자인 로사리오의 복자 도미니코(Dominicus of the Holy Rosary, 일본인)와 복자 알렉시오 사부로(Alexius Saburo, 일본인).
작은 형제회 신부인 성녀 안나의 복자 리카르도(Richardus of St. Anne, 1585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출생)와 복자 베드로 데 아빌라(Petrus de Avila, 1562년 에스파냐 팔로마레스 출생) 그리고 같은 수도회의 수도자인 성 요셉의 복자 빈첸시오(Vincentius of St. Joseph, 1596년 에스파냐 아야몬테 출생).
예수회 신부인 복자 가롤로 스피놀라와 같은 예수회의 수도자인 복자 곤디살보 푸사이(Gundisalvus Fusai, 1580년경 일본 오카야마 출생) · 복자 안토니오 큐니(Antonius Kyuni, 1572년경 일본 미카와 출생) · 로사리오의 복자 토마스(Thomas of the Holy Rosary, 일본인) · 복자 토마스 아카호시(Thomas Akahoshi, 1565년경 일본 히고 출생) · 복자 베드로 삼포/산포(Petrus Sampo/Sanpo, 1580년경 일본 오슈 출생) · 복자 미카엘 숨포/순포(Michael Shumpo/Shunpo, 1589년 일본 오와리 출생) · 복자 루도비코 카와라/가와라(Ludovicus Kawara, 1583년 일본 아리마 출생) · 복자 요한 주고쿠(Joannes Chugoku, 1573년경 일본 야마구치 출생).
작은 형제회 제3회원인 복자 레오 사츠마(Leo Satsuma, 일본인)와 복녀 루치아 데 프레이타스(Lucia de Freitas, 일본인); 교리교사인 복자 안토니오 상가(Antonius Sanga)와 그의 아내인 복녀 막달레나 상가(Magdalena Sanga); 조선 출신의 교리교사인 복자 안토니오(Antonius Coreanus)와 그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Maria)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12살의 복자 요한(Joannes)과 3살의 복자 베드로(Petrus); 복자 바오로 나가이시(Paulus Nagaishi, 일본인)와 그의 아내인 복녀 테클라 나가이시(Tecla Nagaishi, 일본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7살의 복자 베드로(Petrus); 복자 바오로 타나카(Paulus Tanaka, 일본인)와 그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 타나카(Marka Tanaka, 일본인); 복자 도미니코 샤마다/하마다(Dominicus Xamada/Hamada, 일본인)와 그의 아내인 복녀 클라라 샤마다/하마다(Clara Xamada/Hamada).
포르투갈 출신 군인으로 일본에 정착했다가 1619년에 순교한 복자 도미니코 호르헤(Dominicus Jorge)의 아내인 복녀 엘리사벳/이사벨라 페르난데스(Elisabeth/Isabella Fernandes, 에스파냐인)와 4살 된 아들인 복자 이냐시오 호르헤(Ignatius Jorge); 1619년에 순교한 복자 안드레아 토쿠안(Andreas Tokuan, 일본 나가사키 출생)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 토쿠안(Maria Tokuan, 일본인);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으로 1619년에 순교한 복자 코스마 타케야(Cosma Takeya)의 아내인 복녀 아녜스 타케야(Agnes Takeya, 일본인); 1619년에 순교한 복자 요한 쇼운(Joannes Shoun, 일본인)의 아내인 복녀 마리아 쇼운(Maria Shoun, 일본인).
복녀 도미니카 온가타/오가타(Dominica Ongata/Ogata, 일본인), 복녀 마리아 타나우라(Maria Tanaura, 일본인), 일본인 과부인 복녀 아폴로니아(Apollonia)와 복녀 가타리나(Catharina); 1619년에 순교한 복자 마티아 나카노(Matthias Nakano, 일본 오무라 출생)의 아들인 복자 도미니코 나카노(Dominicus Nakano, 일본인); 복자 바르톨로메오 카와노 시치에몬(Bartholomaeus Kawano Shichiemon, 일본 아리마 출생); 복자 다미아노 탄다 야이치(Damianus Tanda Yaichi, 1582년 일본 오무라 출생)와 5살 된 그의 아들 복자 미카엘 탄다(Michael Tanda, 일본인); 복자 토마스 시치로(Thomas Shichiro, 1552년 일본 출생)와 복자 루포 이시모토(Rufus Ishimoto, 일본인); 복자 클레멘스 오노(Clemens Ono, 일본인)와 그의 아들인 복자 안토니오 오노(Antonius Ono, 일본인)이다.♣
출처 (1건)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63-68쪽.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