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 · 순교자
성 요한
(John)
얀 · 요안네스 · 요한네스 · 이반 · 장 · 쟝 · 조반니 · 조안네스 · 조한네스 · 존 · 죤 · 지오반니 · 한스 · 후안
성 크리스토포로(Christophorus), 성 안토니오(Antonius), 성 요한네스(Joannes, 또는 요한)은 16세기에 살았던 멕시코 원주민 소년들이다.
성 크리스토포로는 당시 추장의 아들이자 후계자였고, 성 안토니오는 지역 추장과 친척 사이였으며 성 요한은 성 안토니오의 하인이었다.
멕시코의 복음화는 1524년 도미니코 수도회와 함께 멕시코에 도착한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세 소년 모두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다.
당시 선교사들의 주요 관심사는 광범위하고 탄탄한 복음화를 수행하고 원주민들의 인격적, 종교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 및 관습과 극명하게 반대되는 미신과 부족의 의식이나 전통을 없애는 데 힘썼다.
특히 원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이교 우상을 제거하고자 노력했고, 인신 제사를 포함한 우상 숭배 의식을 근절하고 일부다처제와 잦은 음주와 그로 인한 폭력적인 행동을 바로 잡고자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에스파냐 정복자들과 함께 가면서 대화와 상호존중보다는 무력을 통한 파괴와 개종이 이루어지는 문제도 함께 있었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모습은 자연히 원주민 인디언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성 크리스토포로는 1514년에서 1515년 사이에 멕시코 중동부 틀락스칼라의 아틀리우에치아(Atlihuetzia)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른 세 형들의 뒤를 따라 1524년에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우고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고 나서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개종시키려고 애썼고, 특히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의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간절히 청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실망한 성 크리스토포로는 집안의 우상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여러 번 꾸짖고 용서했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자 결국 그를 죽이기로 했다.
그만큼 이교 신앙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강력했다.
아들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버지는 성 크리스토포로를 바닥에 내던지고 팔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때렸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아들이 기도를 멈추지 않자 불타는 장작더미에 던져 넣고 말았다.
아들을 구하려던 어머니도 결국은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성 크리스토포로가 13살이었던 1527년에 일어난 일이다.
성 안토니오와 성 요한은 1516년에서 1517년 사이에 틀락스칼라의 티사틀란(Tizatlan)에서 태어났다.
성 안토니오는 지역 추장의 조카이자 상속자였고, 성 요한은 미천한 출신으로 추장의 하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프란치스코회 학교에 다녔다.
그들은 주인과 하인이라는 사회적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앙 안에서 형제와 같은 유대감을 느끼며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1529년에 도미니코 수도회 선교사들이 오악사카(Oaxaca)에 새로운 선교 기지를 세우기로 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회 학교 교장 신부에게 인디언 사이에서 통역을 맡아줄 소년들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교장 신부는 학생들을 모아 놓고 도미니코 수도회 선교사들의 요청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임무라고 경고했다. 13살의 성 안토니오와 성 요한은 즉시 자원했고, 귀족 출신의 디에고도 함께했다.
그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우상을 수습하는 것을 도왔다.
그 후에도 성 안토니오와 성 요한은 푸에블라(Puebla) 근처 쿠아우틴찬(Cuauhtinchán)으로 가서 우상을 없애는 일을 계속했다.
성 안토니오는 보통 집 안으로 들어가서 우상을 수습했고, 성 요한은 문 앞에 남아서 망을 보았다.
그때 몽둥이를 든 격분한 인디언들이 다가와 성 요한을 사정없이 때려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았다.
성 안토니오는 왜 죄 없는 친구를 때리느냐고 따지며 우상은 악마적이라 치우는 것이라 했지만, 인디언들은 그 또한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을 근처 계곡에 버렸다.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테페아카(Tepeaca)로 옮겨 안장하였다.
세 젊은이가 살해당한 역사적 사건은 그들의 죽음 직후부터 신앙에 대한 증오로 인한 죽음, 즉 순교로 여겨졌다.
세 명의 멕시코 젊은이가 흘린 피는 그 나라에서 가톨릭이 크게 꽃피는 첫 씨앗이 되었다.
멕시코 교회 역사가들은 그들이 멕시코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최초 순교자로서 신대륙 복음화의 첫 결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시복 절차는 1982년 틀락스칼라 교구에서 시작되었고, 1990년 2월 6일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세 명의 하느님의 종들의 죽음을 신앙의 증오로 인한 순교로 인정하고, 1990년 5월 6일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직접 그들의 시복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멕시코 출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 성 요한 디다코(후안 디에고) 쿠아우틀라토아친(Joannes Didacus/Juan Diego Cuauhtlatoatzin, 12월 9일)도 함께 복자품에 올랐다.
세 젊은이의 시복식 이후 그들에 대한 공경은 멕시코 전역으로 퍼졌고, 멕시코 청소년의 수호자로 선포되며 그들의 전구를 통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면서 멕시코 주교회의는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서 세 순교복자에 대한 시성 절차를 진행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그 후 교황청 시성부의 검토를 거쳐 2017년 10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세 소년 순교복자를 성인품에 올렸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복식 강론을 통해 큰 기쁨으로 세 명의 어린 순교자들을 복자로 선포한다며, 그들이 어린 나이에도 선교사들의 말씀과 증거에 매료되어 그들의 협력자가 되었고, 다른 원주민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는데, 이는 복음 전파가 하느님 백성 모두의 과업으로 어린이를 포함하여 누구도 배제될 수 없음을 보여준 숭고하고 교훈적인 모범이라고 치하하였다.
그들의 전례 기념일은 9월 23일로 정해졌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3일 목록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던 시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으나 그로 인해 동포들에게 매를 맞아 멕시코 틀락스칼라에서 순교한 복자(2004년 당시) 크리스토포로, 안토니오, 요한이 있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