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지배적 욕구 알아차리기 -7죄종-
어린아이는 배고픈 것과 배 아픈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울면 배가 아파 우는지 배가 고파 우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또 어린아이는 목마른 것과 배고픈 것을 하나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젖에서 밥으로 넘어갈 시기에 아이들이 겪는 곤란 중의 하나가 바로 욕구에 대한 식별인데 젖을 먹을 때는 목마른 욕구와 배고픈 욕구가 젖 하나로 해결되었는데 밥으로 옮겨가면, 목마르면 물을 찾아야 하고 배고프면 밥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이때 이 일이 처음인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가 젖을 쉽게 떼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젖 먹을 때 엄마와의 사랑스런 접촉도 있지만 이런 욕구 식별의 번거로움도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아이의 이런 현상이 말하는 것은 한 인간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욕구를 자각하고 그 욕구가 무슨 욕구인지를 알아차리고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배고프면 밥을 찾아 먹는 행위가 인간에겐 너무나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이 일이 인간에게 이처럼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기까지에는 최초의 인간은 미지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무수한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적 생활을 갈망하는 욕구가 일어날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영적인 욕구가 일어나면 마음은 이 낯선 욕구가 무엇에 대한 욕구인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적 욕구를 민감하게 느끼고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구인가를 자각하고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낯선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요구들에 일일이 반응하려 하지 않고 이미 그 해결책이 마련된 몇몇 지배적인 욕구들 아래로 귀속시켜 처리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지배적인 몇몇 욕구들이란 식욕, 성욕, 수면욕, 소유욕, 성취욕, 명예욕, 권세욕과 같은 것들입니다.
가령 어떤 영적 욕구가 일어나면 마음에는 이 미지의 욕구를 성적 욕구아래 귀속시켜 대응하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욕구가 일어날 때 성욕이 따라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생활을 갈망하는 욕구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성적인 욕구로 잘못 알아듣고 잘못 대처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는 청소년기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며 또 부부간에도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럴 경우는 성적관계를 자제함으로서 영적 감각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영적 욕구가 일어날 때 소유욕이 덩달아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져 삶이 짜증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때 영적 생활을 바라는 욕구는 오히려 그 사람을 인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와 반대로 마침 수중에 돈이 있으면 낭비욕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여자에게 많이 일어나는데 영적 생활에 대한 갈증을 느끼면 쇼핑을 나가 물건을 잔뜩 사들고 들어옵니다.
또 영적 욕구가 일어날 때 담배가 당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중에 담배가 당기기도 하고, 기도 중에 목이 말라 물을 찾기도 합니다. 또 배고픔을 동반하는 사람은 실제로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도 영적 욕구가 일어날 때마다 음식이나 군것질거리를 찾습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각자 지배적인 욕구가 있는데 이 지배적인 욕구가 영적 생활에 대한 욕구를 대체해버리기 때문에 영적 갈증을 느끼면서도 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의 출발점이 금욕이나 절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평소 자신의 지배적인 욕구를 끊거나 자제해봐야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게 되고, 알아야 대처방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그릇된 대체습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소위 7죄종이라 불리는 일곱 가지 죄의 습관입니다. 7죄종은 교만, 인색, 분노, 탐색, 질투, 탐식, 나태입니다. 이 일곱가지 그릇된 습관들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려 다가올 때 먼저 일어나 은총을 가로채 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성령7은이라고 하는데 슬기, 굳셈, 두려움, 의견, 통달, 지식, 효경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영적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욕구를 마음이 기존의 지배적인 욕구들로 대체해서 해결하려 한 습관적 산물입니다. 따라서 영적 감각을 살리려면 먼저 일어나는 욕구를 자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슬기를 가리고
인색은 굳셈을 가리며
색욕은 두려움을,
분노는 의견을,
탐식은 통달을,
질투는 지식을,
나태는 효경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이치를 알고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리게 되면 교만이 일어날 때 그 다음에 슬기가 오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따라서 교만을 알아차리면 슬기를 얻고
인색을 알아차리면 굳셈을 얻으며
색욕을 알아차리면 두려움을,
분노를 알아차리면 의견을,
탐식을 알아차리면 통달을,
질투를 알아차리면 지식을,
나태를 알아차리면 효경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렇게 몇몇 지배적인 욕구로 다양한 미지의 욕구를 대체시켜 반응할 때 문제는 욕구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충족되지 않은 채 불만으로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스트레스라고 부릅니다 스트레스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잔재들입니다. 이것은 불만, 짜증, 언짢음과 같은 기분으로 마음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우리의 모든 의식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병으로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또 하나 해악은 마음이 이렇게 반응하면 우리의 의식은 평소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무디어진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배적인 욕구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아는 일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잠이 지배적인 욕구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잠으로만 해결하려 합니다. 그는 자고 또 자도 계속 졸립니다.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졸리는 현상은 잠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미지의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졸리는 현상을 기도로 해결할 수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식욕이 지배적인 욕구인 사람은 모든 일을 다 먹는 것으로 대체하려 합니다. 여행을 해도 음식과 연관되며 돌아와서도 잘 먹은 얘기만 늘어놓습니다. 어느 집을 방문해도 그 집 음식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손님 대접을 잘했는지 못했는지가 판가름 납니다. 식욕이 지나치다 싶은 사람은 금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식사의 적정량을 알게 되고 그 나머지 식욕에 가린 영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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