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마태 1, 18-19)
성 요셉(Joseph), 마리아의 남편
+1세기경
성 요셉과 같은 이름, 요세푸스, 요제프,조셉
3월은 성 요셉 성월. 동정 마리아의 남편으로,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성 요셉에 대한 이해는 마리아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성 요셉 성월을 맞아 성서에 나타난 요셉과 성요셉 신심 등에 대해 알아본다.
▨성 요셉은 누구인가 요셉(Joseph)은 ‘더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하느님께서 후손을 더하시기를’ 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구약시대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서 유래했는데 예수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의 아버지이지만 신약의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 약간 언급되어 있을 뿐 그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성서에 따르면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당시 요셉은 그녀의 약혼자였다. 그 무렵 유다교 율법은 불의를 행한 약혼녀는 돌로 쳐죽이든지 극형에 처할 정도로 엄했지만 그는 성령으로 인한 잉태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목수였던 그는 예수의 이름을 지어주고 예수와 마리아를 보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예수가 목수였던 것도 요셉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게 신학계의 정설. 어린 예수가 성장할 때까지 요셉은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그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 속에 가족을 이집트로 피신시키고 나중에 예수를 성전에 봉헌했다. ▨성 요셉 신심 성 요셉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으로 마리아의 순결을 흠 없이 보호했을 뿐 아니라 성 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 성 요셉에 대한 신심이 본격적으로 고양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에 접어들면서 부터다.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이유는 그의 역할이 성모 마리아만큼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의적으로 확인되어 전례력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324년 마리아의 종 수도회가 3월19일을 성 요셉 대축일로 지낸 데 이어 1479년 교황 식스토 4세가 이날을 성 요셉 대축일로 공식 인가했다. 이는 성 요셉 공경이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요한 제르송 등이 15-16세기 성 요셉 공경 확산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자서전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를 이루듯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 성자께서는 나자렛 성 가정 안에서 이타적인 삼위일체의 삶을 살았다”면서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 요셉을 공경하고 나자렛 성 가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870년 교황 비오 9세는 그를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으며, 레오 13세 교황은 성 가정의 보호자인 그를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 자리에 올렸다. 또 1955년 교황 비오 12세는 노동절(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제정했다. 성 요셉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이다. 주교회의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1841년 조선교구의 주보 성인을 허락할 당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을 함께 모실 것을 조건으로 했다는 사실을 지난 99년 가을 정기총회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처럼 성 요셉은 한국교회와도 각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성 요셉의 모범적인 삶과 신앙은 만사의 근원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커다란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한창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교회가 오늘 하루만큼은 사순시기를 중단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요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 성인을 크게 경축합니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서상의 기록은 복음서의 전사에 속하는 마태오복음 1-2장, 루가복음 1-2장에서 예수의 탄생과 더불어 보도된 내용이 전부입니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마태 1,16)이었으나, 다윗의 고을인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살지 않고 갈릴래아지방 나자렛에서 살았던 것(루가 2,4)으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목수 직업을 가졌던 요셉은 '의로운 사람', 즉 법대로 사는 사람(마태 1,19)으로 이미 세간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그녀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명을 받들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호구조사령 때문에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에 왔고, 여기서 예수를 낳게 됩니다. 요셉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목동들과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았고, 헤로데 대왕의 무죄한 영아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였으며, 헤로데 대왕이 죽은 후에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나자렛으로 와서 살게됩니다. 요셉은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으며, 예수가 12세였을 때,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잃어버렸다가, 학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던 아들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전사가 보도하는 내용입니다. 그후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이고 목수였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 고향방문 때 그곳 사람들의 입으로 증언됩니다.(마태 13,55; 마르 6,3; 루가 4,22)
기원후 2세기경에 예수의 형제로 추정되는 야고보가 편집한, 그러나 위경(僞經)에 해당하는 《야고보 복음서》에는 요셉과 마리아, 안나와 요아킴, 그리고 예수의 소위 '잃어버린 시절'(12살~30살)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많은데, 야고보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할 때 이미 80세의 고령이었고 이미 결혼한 경험이 있어 슬하에 야고보, 유다, 시몬, 미리암 등의 자식들을 둔 것으로(마태 13,55) 전해집니다. 야고보복음서의 이러한 내용은 초기 교회가 직면한 일련의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들기 위한 시도로 보이는데, 당시 중대한 신학적 문제들로는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과 천주의 모친성, 성령으로 말미암은 예수잉태, 예수의 신성등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복음은 어디까지나 위경에 속하기 때문에 그 내용의 역사성과 진실성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으나 정경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요셉성인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원래 그는 가장자리에 서 있고, 그림자처럼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 가운데서도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었고, 하느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내리는 지시를 군말 없이 따랐으며, 보여주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요셉에 관한 성서적 근거는 마태오와 루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의 탄생예고부터 12살까지로 한정되나 그 어느 부분에도 요셉 스스로의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셉은 그저 침묵으로 등장하며, 그저 마음먹는 것뿐입니다. 성서저자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의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서상 말하지 못하는 요셉의 답답함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주어진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의 넉넉한 마음 때문입니다. 넉넉한 마음은 때로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성인은 '임종자의 수호자', '노동자의 수호자', '가정의 수호자', 게다가 비오 9세는 1870년 '교회의 수호자'로 정합니다. 특히나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1841년 8월 22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분의 배필 성 요셉을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정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는 요셉이 모르는 사이에 잉태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자 요셉은 몰래 파혼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꿈에 나타난 천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결국 요셉은 처음에 자신의 잣대로 파혼을 결심하지만, 금방 그 잣대를 내려놓고 하느님의 잣대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그 바라봄의 결론은 받아들임입니다. 마리아와 그녀의 태중에 있는 아기를 수호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요셉을 교회, 노동자, 임종자, 가정의 수호자로 불리우게합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돌보고 수호할 수 있는 은총을 요셉성인을 통하여 하느님께 간구해야 할것입니다.
묵묵히 따르는 삶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요셉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도 요셉의 협조가 없었다면 허사였을지 모릅니다.
꿈에서 천사가 전해주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믿고
현실의 엄청난 짐을 지기엔 모든 것이 무모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성가정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묵묵히 따랐습니다.
빛나는 삶은 아니었지만 전적으로 예수님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요셉 성인을 바라볼수록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과연 내 삶의 중심에도 얼마나 예수께서 계시는지 묻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이해할 수 없고' 고통스런 십자가를
그분을 위해 얼마나 묵묵히 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논리와 이유를 앞세운다면 요셉도 마리아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평화와 기쁨을 누림은 제 마음이
당신께 향해 있기 때문임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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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원 요셉, 김현 요셉 형제님 축일 (3/19) 축하합니다.
한진호
2007. 3. 18. 오전 3: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