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

순교자

성 에우세비오

(Eusebius)

에우세비오스 · 에우세비우스

10월 22일🕰 +연대미상

성 필립보(Philippus)는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트라키아(Thracia) 지방 에디르네주(Edirne州, 튀르키예의 가장 서쪽 지역으로 그리스와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의 마르마라 에레글리시(Marmara Ereglisi)의 주교였다.

마르마라 에레글리시는 이스탄불(Istanbul)에서 서쪽으로 90km 떨어진 마르마라해 북쪽 해안의 항구도시로 고대에 페린투스(Perinthus)라는 이름으로 건립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 때 헤라클레아로 개명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헤라클레아 페린투스(Heraclea Perinthus)로도 불린다. “성 필립보 순교록”(Passio sancti Philippi)에 따르면 그는 주교로 선출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성직을 수행했던 노인으로 알려졌다.

그의 출생이나 주교 선출 연도 등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경건함과 지혜로 교구를 다스리며 많은 제자를 신앙과 학문으로 양성하여 하느님 사업을 확장하는데 헌신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가 시작될 무렵 그는 이미 나이 많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황제가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는 첫 번째 칙령을 반포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권고했으나 그는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신자들을 돕기 위해 남겠다고 했다.

당시 헤라클레아의 총독인 바수스(Bassus)가 교회를 폐쇄하고 전례에 사용하는 모든 제구와 성물도 가져오라고 했다.

성 필립보는 성당이 폐쇄되어도 주님께서는 성벽 안에만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머무신다며 신자들을 모아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총독이 금과 은으로 된 모든 제구와 성경을 가져오라고 하자 그는 값진 그릇들은 다 가져가도 좋다며 하느님은 귀금속이 아니라 사랑으로 공경을 받으신다고 했다.

하지만 성경책만큼은 총독이 요구할 수도 없고 자신이 넘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당당히 거부하였다.

결국 성 필립보 주교는 총독에 의해 그의 협력자인 성 헤르메스(Hermes) 부제와 함께 체포되었다.

성 헤르메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고, 헤라클레아에서 재판관이자 시의원으로 일하며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그는 부제로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손수 일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총독이 하느님의 말씀을 파괴할 권한이 없으며, 설령 참된 교리가 담긴 모든 문서를 없애더라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총독은 계속해서 성 필립보와 성 헤르메스에게 로마의 신들과 황제에게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했으나 거절당했다.

여러 차례의 채찍질과 고문에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총독은 그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순교록은 그들의 구금 생활이 7개월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성 필립보 주교는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가르쳤다.

바수스 총독이 임기를 마치고 유스티누스(Justinus) 총독이 새로 부임하였다.

그래도 바수스 총독은 이성적으로 의견을 듣고 종종 양보하기도 했는데, 유스티누스 총독은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총독은 성 필립보 주교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하며 하지 않으면 고문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성 필립보는 그 어떤 고문으로도 자신을 굴복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성 필립보는 돌바닥 위에서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매를 맞아 다른 이가 안아서 감옥으로 다시 데려갈 정도였다.

성 헤르메스 부제도 유스티누스 총독 앞에서 심문과 고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편 박해자들은 오랫동안 숨어 지내던 사제 성 세베로(Severus)를 찾고 있었는데, 그 역시 체포되어 성 필립보 주교와 함께 투옥되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혹독한 감옥 생활을 함께 이겨나갔다. 7개월의 구금 생활 후에 성 필립보 주교와 두 동료는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로 이송되었다.

아드리아노폴리스는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재위)에 의해 재건된 도시로 그의 이름을 따서 하드리아노폴리스(Hdrianopolis)로 불리다가 아드리아노폴리스로 굳어졌는데, 오늘날 튀르키예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로 에디르네주의 주도인 에디르네(Edirne)를 말한다.

유스티누스 총독은 그들을 불러내 심문하며 신앙을 포기할 때까지 매질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자 결국 사형을 선고하고 성 필립보와 성 헤르메스를 화형에 처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강에 던져졌으나 몇몇 신자들이 그물을 던져 수습해 안장했다고 한다.

홀로 감옥에 남았던 성 세베로는 그들의 순교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자신도 순교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다음 날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2일 목록에서 트라키아의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 시대에 투옥되어 채찍질을 당한 뒤 산 채로 화형을 당한 성 필립보 주교와 성 세베로 신부 그리고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와 성 헤르메스를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러 오류가 섞여 있다.

성 필립보 주교와 동료들의 순교는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초기에 일어난 일인데 시기를 잘못 기록하였다.

그리고 동료 순교자로 등장하는 성 세베로와 성 에우세비오는 후대의 성인전 전통에서 등장하는 인물로 “성 필립보 순교록”에 나중에 삽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과 성 필립보와 성 헤르메스와의 관계도 분명하지 않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트라키아 지방 에디르네에서 마르마라 에레글리시의 주교인 성 필립보와 성 헤르메스 부제가 신앙을 위해 고난을 겪고 순교했다고 적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성 필립보는 교회를 폐쇄하고 그 안에 보관된 모든 성물과 서적을 넘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성 필립보가 총독 유스티누스에게 그러한 물건을 넘겨주는 것도, 총독이 그것들을 취하는 것도 모두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투옥되어 채찍질을 맞은 후 결국은 성 헤르메스 부제와 함께 화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성 필립보와 성 헤르메스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다른 두 명의 동료 순교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순교 시기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초기인 303년으로 정정하였다.

성 헤르메스는 이탈리아에서 성 에르메테(Ermete)로 불린다.

한편 옛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탈리아 중동부 마르케주(Marche州)의 페르모(Fermo)에서 성 필립보 주교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는데, 그가 헤라클레아의 주교인 성 필립보와 다른 인물임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고대 문헌적인 증거가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헤라클레아의 성 필립보 주교와 축일이 겹치고 또 그 지역에 동방 교회의 전통이 확산한 점 등을 고려해서 일부 학자들은 페르모에서 기념하는 성 필립보의 유물을 헤라클레아의 성 필립보의 유물로 보기도 한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페르모의 성 필립보 주교에 대해서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